봄시즌 기록행진의 시작은 4월 5일 로테르담 마라톤이었다. 케냐의 던컨 키베트와 제임스 쾀바이가 세운 2:04:07이다. 기록은 같지만 막판 뒤집기로 1,2위가 정해지는 드문 광경이 연출되었다. 같은 날 파리마라톤에서도 코스기록(2:05:47)이 세워졌고 다른 5명이 sub-2:07를 기록했다. 그날 전체 13명의 케냐선수가 2:09이내의 기록을 수립하면서 09년 기록행진의 서막을 열였다.

최근 하프마라톤의 기록을 보면 이런 기록행진은 이미 예상되었는지도 모른다. 이제 하프마라톤에서 sub-60분기록은 어디서나 볼 수 있다. 이런 성적이 마라톤의 기록에도 영향을 미치는 것이다. 또 지금까지 올림픽같은 선수권대회에서는 전략적으로 천천이 달리면서 기록경쟁보다는 순위경쟁에 그치는 관행이 깨지고 기록경쟁으로 이어지는 현상도 기록단축에 영향을 끼치고 있다. 이제는 초반에 치고나가고 그 페이스로 끝까지 밀어부치는 현상들이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또 세계 기록경신을 목표로 한 레이스도 나타났다. 세계기록 행진이 이어지는 베를린 마라톤과 수백만달러의 상금을 건 두바이 마라톤이 그런 경향의 대회이다. 지난해 베이징 올림픽 마라톤, 런던의 사무엘 완지루, 보스턴의 라이언 홀은 경쟁적인 레이스(competitive race)에서 공격적인 레이스(aggressive race)로 마라톤의 판도를 바꿔놓았다고 할 수 있다. 이런 레이싱은 지난 4월 12일 대구마라톤에서 지영준 선수의 레이스에서도 나타났다. 그가 중반에 치고나갔을 때 아프리카 선수들은 페이스메이커로 착각하고 추격하지 않았다고 한다.

이 점에 있어서는 보스턴과 런던이 비슷한 양상을 띄었다. 보스턴에서는 초반 라이언 홀이 매우 빠른 페이스를 이끌었다. 물론 보스턴의 초반코스는 내리막인 이유도 있다. 그리고 그의 페이스가 떨어졌을 때 데리바 메르가가 뉴톤힐스에서 치고나오면서 30km를 지나면서 대열을 이탈하여 단독 선두로 나왔다. 4월 26일 런던에서도 페이스메이커가 초반 황당할 정도의 빠른 페이스를 보였다. 보스턴에서 메르가가 치고나온 비슷한 지점에서 완지루는 1주후 런던에서 혼자 치고나가 우승했다.

역대기록 10걸(2009년 4월 현재)

기록	선수명	국적	수립일	대회장소
2:03:59	Haile Gebrselassie	Ethiopia	2008.09.28	Berlin
2:04:27	Duncan Kibet	Kenya	2009.04.05	Rotterdam
2:04:27	James Kwambai	Kenya	2009.04.05	Rotterdam
2:04:55	Paul Tergat	Kenya	2003.09.28	Berlin
2:04:56	Sammy Korir	Kenya	2003.09.28	Berlin
2:05:04	Abel Kirui	Kenya	2009.04.05	Rotterdam
2:05:10	Samuel Wanjiru	Kenya	2009.04.26	London
2:05:15	Martin Lel	Kenya	2008.04.13	London
2:05:20	Tsegaye Kebede	Ethiopia	2009.04.26	London
2:05:27	Jaouad Gharib	Morocco	2009.04.26	London

페이스전략 - 레이스 측면에서는 좋으나 기록에는 부정적

전문가들은 이런 레이스전략은 최적의 경기력을 발휘하는데는 그다지 바람직하지 않다고 지적한다. 런던마라톤에서 완지루 선수가 코스기록을 경신했지만 레이스를 이끈 방식은 빠른 기록수립을 위해서 따라야할 모범은 아니었다.

앞선 분석에서 올 런던마라톤에서의 완지루와 작년 베를린에서 게브르셀라시에의 세계기록을 비교해본대로 게브르셀라시에가 후반에 더 잘 페이스를 이끈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이를 좀 더 구체적으로 들여다보기위해 아래와 같은 표를 구성해보았다. 가운데 완지루 선수(빨간색)를 기준으로 하고 게브르셀라시에 선수(초록색)와 5km마다 차이를 비교해본 것이다. 같은 장소에서 직접적인 비교가 아닌 런던과 베를린을 비교한 것이지만 각 지점에서의 차이는 확실하게 볼 수 있다.

완지루 선수가 너무 빨리 치고나간 것은 명백하다. 15km지점에서 게브르셀라시에 선수의 세계기록보다 51초를 앞서갔다. 하지만 그 이후 그 리드는 점차적으로 좁아졌고 결국 30km 직전에 그 리드는 상쇄되어 없어졌다. 상상력을 동원하여 게브르셀라시에와 완지루가 같은 대회에서 레이스를 펼치는 것으로 상정하면 뒤처졌던 게브르셀라시에 선수가 29km지점에서 어깨를 나란히 한 후 점차 완지루를 따돌리고 앞서나가는 것을 그릴 수 있다.

하지만 흥미로운 것은 레이스중 가장 큰 차이는 35km-40km 구간에서이다. 이 구간은 지난해 베를린에서 게브르셀라시에가 본격적으로 속도를 내 sub-2:04의 기록을 수립한 구간이다. 그는 이 구간을 14:29로 커버한 반면 완지루는 케베데가 뒤쫓아오는 구도에서도 15:14의 기록을 보였다. 이는 초반 10km에서 '저지른' 오버페이스의 대가로 보인다. 실제 이 구간에서 페이스가 가장 크게 벌어졌다. 그는 초반을 61:36, 후반을 63:34로 달려 거의 2분가까운 차이의 포지티브 스플릿(전반가속형)으로 달렸다. 반면 작년 게브르셀라세이는 7초차의 네가티브 스플릿(후반가속형)으로 달렸다.

초반의 엄청난 출발 페이스, 28km에서 30km 구간의 스퍼트 등으로 기록향상은 시도되었지만 세계기록 수립은 실패했다. 세계기록을 수립하려면 제대로 된 날씨, 제대로 된 페이스 등 모든 게 뒷받침되어야 한다. 9월 베를린 마라톤 출전을 공언한 만큼 세계 육상계의 관심을 베를린으로 옮겨가게 되었다. 더군다나 베를린마라톤에서는 게브르셀라시에 선수가 07년, 08년에 세계기록을 수립했고, 09년에도 그의 출전이 예상되는 만큼 명실상부 세기의 라이벌전이 예상된다.

위의 [역대기록 10걸] 표를 보면 역대 10걸의 기록중 6명의 기록이 2009년 봄에 수립되었다. 바야흐르 세계마라톤은 스피드의 시대로 접어들었다고 할 수 있다. 88년에 수립된 딘사모의 세계기록처럼 세계기록이 10년 동안 깨지지 않고 유지되는 현상은 당분간 없을 것으로 보인다. 성급한 과학자들은 벌써 1시간대의 마라톤기록을 예상하기도 한다. 그래서 가을의 베를린마라톤이 더욱 기다려진다.

참고자료 : Science of sports, BBC 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