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문겸²⁾

1. 머리말
2. 중년층의 여가문화
3. 중년층과 마라톤
4. 마라톤의 사회학적 함의
5. 맺음말

1. 머리말

1) 문제 제기

우리나라에서 마라톤에 대한 관심은 색다르다. 1936년 제11회 베를린 올림픽에서 손기정 선수가 쟁취한 우승은 일제 치하의 암울했던 시대 상황에서 민족적 자긍심을 드높이는 사건이었다. 이 금메달은 1976년 양정모가 레슬링에서 금메달을 따기 전까지는 유일한 것이었고, 올림픽 금메달에 목말라 하던 우리나라 국민들에게는 영원한 우상이었다.³⁾ 손기정 이후 서윤복은 대한민국의 마라톤 선수로서 1947년 제51회 보스턴 마라톤 대회에 출전해 세계 신기록을 세우며 우승했다. 그리고 1950년도 제54회 보스톤 마라톤 대회에서도 우리나라의 함기용 선수가 세계신기록으로 우승했을 뿐만 아니라, 송길윤, 최윤칠 선수가 차례로 2, 3위를 휩쓸면서 한국인의 저력을 만방에 떨쳤다. 이러한 사건은 일제 식민지를 경험하고 경제적으로 낙후된 한민족에게 무한한 자긍심을 심어주었고 마라톤 강국으로서의 이미지를 구축했다.

그 이후에 황영조가 19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에서 우승하고, 이봉주의 2001년 보스톤 마라톤과 2002년 아시안게임 우승으로 이어지면서 마라톤은 우리 국민에게 단순히 하나의 스포츠 종목이기에 앞서 민족사적인 의미를 지니고 있었다.

그러나 마라톤에 대한 이러한 이미지는 어디까지나 엘리트 스포츠에 한정된 것이었고, 일반인들에게는 “외로운 자기와의 싸움”이라는 이미지로 신성화되거나 경원시되었다. 이러한 사고방식이 붕괴되고 일반인들도 마라톤을 즐기기 시작한 것은 1990년대 후반부터 이고, 2000년대 들어와서는 폭발적인 붐을 일으킨다.

1995년도에 동아일보와 조선일보가 주최하는 마라톤대회에 국내에서 처음으로 마스터스⁴⁾ 부문을 신설함으로써 일반인들도 마라톤대회에 참가하기 시작한다. 조선일보가 주최한 1995년 춘천마라톤의 경우, 당시 약 400여명 정도밖에 되지 않던 대회 참가인원이 1999년도에 오면 1만 2천여 명을 넘어서고 2001년도에는 2만 명을 넘어선다. 이때 까지만 해도 풀코스 외에도 10Km 건강달리기 종목이 있었다. 그러나 그 이후에는 아예 풀코스 종목만 있게 되었고, 이러한 제약조건에도 불구하고 2003년도에는 참가자들이 너무 많아 인터넷 신청이 마비되어 접수를 연기하는 사태가 벌어질 정도였다. 2007년 현재 인터넷에서 마라톤 분야 점유율 1위를 차지하는 사이트 ‘마라톤 온라인’에 등록된 전국 마라톤 대회는 423개나 된다. 이러한 마라톤 붐이 하나의 사회현상으로 자리 잡고 있는 현실에 비해, 여기에 대한 학문적인 연구는 매우 일천하다.

마라톤에 대한 대표적인 국내 연구는 마라톤 인구가 급격히 증가한 이유를 탐색한 연구로 이재희 및 이재희-유용상의 연구가 있고⁵⁾, 마라톤의 참여동기를 연구한 장진우․김영범의 논문⁶⁾, 그리고 마라톤과 여가만족도의 관계를 연구한 장진우․손영일의 논문이 있다.⁷⁾ 마라톤의 참여동기나 여가만족도와의 관계를 연구한 장진우, 김영범, 손영일의 논문은 설문 조사를 통해 수집한 계량적 자료를 분석한 글로써, 관련된 변인을 구명했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마라톤 인구가 급증한 이유를 논의한 이재희․유용상의 논문은 심층면접을 통해 수집한 질적 자료를 분석한 글로써, 보다 심도 있는 접근을 하였다. 그런데 이러한 연구들은 방법론적 틀에 구속되어 보다 의미 있는 해석을 하는 데에는 다소 미흡한 점이 있었다. 따라서 이 글에서는 마라톤 붐이 일어난 이유에 대해 해석학적인 분석을 시도하고, 또 그로부터 사회학적 함의를 도출해 보고자 하는 것이 주된 목적이다.

한편 마라톤 대회에 참가하는 연령층은 30대 중반부터 40대 후반까지가 압도적이고, 또한 이 연령대에서 마라톤에 가장 많이 입문한다. 이런 점을 놓고 볼 때 마라톤은 중장년층이 즐기는 운동이라고 볼 수 있다. 이것은 마스터스 마라톤이라는 개념에서도 확인된다. 미국의 마라톤대회에서는 일반적으로 40∼49세의 아마추어 참가자를 '마스터스', 50∼59세 참가자들을 '베테랑', 60∼69세 참가자들을 '시니어'라고 부르며 이들을 통칭해서 부를 때 '마스터스'라고 한다. 이 글에서는 중년층의 개념을 40대와 50대를 지칭하는 용어로 사용하고자 한다.

그리고 이 글은 다음과 같이 구성된다. 우리나라 중년층의 전반적인 여가문화를 이해하기 위해 먼저 한국 여가문화의 변천사를 살펴보면서 새로운 여가양식의 등장에 대해 개괄적으로 논의한다. 그 다음에는 구체적인 통계자료를 바탕으로 중년층의 일반적인 여가행태를 살펴보면서 생활체육으로서의 조깅과⁸⁾ 마라톤의 위상에 대해 검토한다. 다음 장에서는 마라톤에 초점을 맞추어 마라톤 인구가 급성장한 이유와 마라톤 실천의 유형을 살펴본다. 그리고 마지막 장에서는 마라톤이 지니고 있는 사회학적 함의를 살펴보기로 한다.

2) 자료 및 연구방법

사회현상은 특정한 상황의 맥락 속에서 이루어지는 개인들 간의 상호작용 또는 그것의 산물이다. 이러한 상호작용은 언제나 행위자들 간의 해석적 과정을 수반한다. 그 과정은 단순히 외양적 관찰만으로는 파악하기 어렵다. 물론 설문조사나 경험적 자료의 수집을 통해 양적인 분석을 함으로써 사회현상에 대해 설명을 할 수 있다.

그러나 개인 행위자들의 주관적 동기나 의미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감정이입, 추체험, 직관적 이해, 상상적인 사고실험 등도 필요하다. 이러한 과정은 객관적으로 가능한 인과관계를 설정하기 위한 예비적 과정의 성격을 띤다. 그런 인과관계는 경험적 자료를 통해 입증되어야 하지만, 양적이고 통계적인 자료에 한정될 필요는 없다. 인과관계를 해석적으로 추정할 수 있는 자료로도 가능하다. 따라서 이 글에서는 양적이고 경험적인 통계 자료를 기본적으로 활용하고, 나아가서는 마라톤이라는 사회현상이 지닌 복합적이고 다층적인 의미를 해석하기 위해 개방형 설문 조사와 참여관찰을 병행한다.

이 글의 구성은 일차적으로는 필자가 2001년부터 2005년도까지 마라톤 동호회에 참여하여 활동하면서 직접 체험한 경험과 참여관찰을 바탕으로 한다. 그리고 현재 인터넷에서 마라톤 분야의 49.5%를 점유하는 최대 규모 사이트인 ‘마라톤 온라인’에서 2001년부터 2008년에 걸쳐 조사한 설문 자료를 활용한다. 또한 보다 심도 있는 분석을 위해 ‘마라톤 온라인’을 통해 2008년 2월 14일에서 20일까지 개방식 설문조사를 하여 보다 의미 있는 자료를 수집하였다. 이 글에서 사용되는 구체적인 자료는 다음과 같다.

◎ 마라톤온라인의 자체 설문조사
2001년 설문조사(총 응답자수 367명): 접속자의 연령대
2001년 설문조사(총 응답자수 337명): 훈련 방식
2001년 설문조사(총 응답자수 444명): 달리기 동기
2001년 설문조사(총 응답자수 420명): 참여한 가장 먼 장거리대회
2001년 5월 설문조사(총 응답자수 645명): 달리기 경력
2001년 6월 설문조사(총 응답자수 544명): 달리기의 심취 정도
2001년 8월 설문조사(총 응답자수 590명): 접속자의 학력
2001년 8월 설문조사(총 응답자수 724명): 접속자의 직업
2001년 9월 설문조사(총 응답자수 563명): 동호회 가입 여부
2001년 10월 설문조사(총 응답자수 912명): 접속자의 연 수입
2001년 11월 설문조사(총 응답자수 779명): 일주일 훈련빈도
2001년 11월 설문조사(총 응답자수 703명): 훈련시 기록측정 여부
2004년 2월 설문조사(총 응답자수 2041명): 달리기의 즐거움이 지니는 의미
2006년 6월 설문조사(총 응답자수 3645명): 달리기를 시작한 연령
2007년 1월 설문조사(총 응답자수 2872명): 달리기의 의미(달리기 생활의 화두는?)

◎ 자유게시판을 통한 개방식 설문조사⁹⁾

2008년 2월 14일 설문조사(총 1363번 조회에 17명 응답): 마라톤 인구 증가 이유
2008년 2월 16일 설문조사(총 764번 조회에 10명 응답): 마라톤 이후 달라진 점
2008년 2월 16일 설문조사(총 521번 조회에 10명 응답): 마라톤 동호회 평가
2008년 2월 17일 설문조사(총 570번 조회에 9명 응답): 즐달과 기록달에 관한 의견
2008년 2월 20일 설문조사(총 759번 조회에 11명 응답): 마라톤의 상업화

인터넷 사이트를 통한 조사는 어느 정도 문제점을 안고 있다. 그 대표적인 것이 응답자의 동질성을 확보하기가 어렵다는 점이다. 그럼에도 마라톤온라인 접속자들은 대부분 마라톤 자체에 큰 관심을 가지고 있고, 이를 통해 정보를 수집하고 의견 교환을 한다는 점에서는 어느 정도 동질적인 속성을 공유한다고 판단할 수 있다. 실제 마라톤 붐이 조성되기 시작하는 2001년도에 접속한 사람들은 거의 마니아 수준에 가까운 사람들이다. 즉 하프마라톤(38.5%)과 풀코스(37.1%)에 도전한 사람이 75.6%이며¹⁰⁾, 일주일에 3번 이상의 훈련 빈도로 달리는 사람이 75.9%에 이르고¹¹⁾, 훈련시 스톱워치 등으로 기록을 측정하는 사람이 83.4%이다.¹²⁾

또한 달리기의 심취정도로 보자면, ‘그냥 좋아한다’를 포함해 ‘중독된 편이다’까지 합하면 95.0%에 달한다.¹³⁾ 이러한 결과를 놓고 볼 때 마라톤온라인의 접속자는 대체로 마라톤에 매우 관심이 많고 마니아 수준에 가까운 사람들이라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또한 설문조사에 응답하는 사람들은 마라톤에 대해 보다 적극적인 관심을 가진 사람들이라고 유추할 수 있다. 이 글은 이러한 전제를 바탕으로 구성된다.

* 이 논문은 부산대학교 자유과제 학술연구비(2년)에 의하여 연구되었음. 이글이 나오도록 문제의식을 던져 주신 박재환 선생님께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이 글을 구성하는데 흔쾌히 자료사용을 허락해 준 마라톤온라인 운영자님께도 감사드립니다.

** 부산대학교 사회과학대학 사회학과 부교수 (mkkim@pusan.ac.kr)

3) 손기정 이후 서윤복은 대한민국의 마라톤 선수로서 1947년 제51회 보스턴 마라톤 대회에 출전해 세계 신기록을 세우며 우승했다. 그리고 1950년도 제54회 보스톤 마라톤 대회에서도 우리나라의 함기용 선수가 세계신기록으로 우승했을 뿐만 아니라, 송길윤, 최윤칠 선수가 차례로 2, 3위를 휩쓸면서 한국인의 저력을 만방에 떨쳤다. 이러한 사건은 일제 식민지를 경험하고 경제적으로 낙후된 한민족에게 무한한 자긍심을 심어주었고 마라톤 강국으로서의 이미지를 구축했다.

4) '마스터(Master)'란 어떤 분야의 대가나 명인 혹은 숙련된 기술자를 뜻하는 단어이다. 그러나 마라톤에서는 달리기를 취미 이상으로 좋아하는 '마니아'를 지칭한다. 한마디로 마라톤대회에서 마스터스는 마라톤을 좋아하는 '아마추어 풀코스 완주자'로 이해하면 된다.

5) 이재희, 「마라톤 권하는 사회」, 『문화과학』33호, 2002. 이재희·유용상, 「한국사회의 마라톤 붐(boom) 현상 분석」, 『한국체육학회지』 제45권, 제1호, 2006, 249-260쪽.

6) 장진우·김영범, 「마라톤 동호인의 참여동기 분석」, 『한국스포츠리서치』 제15권, 제3호, 2004, 263-272쪽.

7) 장진우·손영일, 「마라톤 동호인들의 참여 정도와 여가 만족도의 관계」, 『한국스포츠리서치』 제15권, 제4호, 2004, 317-328쪽.

8) 마라톤은 기본적으로 조깅(jogging: 천천히 달리기)이라는 개념을 포괄한다. 조깅이라는 개념 자체가 알려진 계기는 1979년 미국의 대통령 지미 카터가 방한했을 때를 들 수 있다. 수행원들과 함께 새벽 공기를 가르며 뛰는 모습이 언론을 통해 보도가 되면서 깊은 인상을 우리에게 심어주었고 조깅이라는 개념이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9) 마라톤온라인 http://marathon.pe.kr/ (검색일: 2008. 2. 14-2. 20)

10) 마라톤온라인, 2001년 조사.

11) 마라톤온라인, 2001년 11월 조사.

12) 마라톤온라인, 2001년 11월 조사.

13) 마라톤온라인, 2001년 6월 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