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밀 자토펙(Emil Zatopek)

"새는 날고 물고기는 헤엄치고 사람은 달린다."
지난 22일 체코 프라하의 한 군사병원에서 78세로 삶을 마친 '인간기관차' 에밀 자토펙의 명언이다.

그의 현역 시절, 육상 장거리에서는 어느 누구도 저멀리 앞서 나가는 자토펙의 그림자를 밟을 수 없었다. 자토펙의 유일한 경쟁자는 오직 그 자신일 뿐이었다.

1922년 체코 중부 모라비아 지방의 코프리브니체에서 가난한 목수의 일곱째 아들로 태어난 자토펙은 구두공장 노동자로 일하던 중 공장 주인이 후원하는 1천5백m 대회에서 우승하면서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했다. 첫 국제무대인 48년 런던올림픽 1만m 결승에서 초반 10위로 쳐졌던 자토펙은 중반 이후 갑자기 튀쳐나와 2위를 한바퀴차로 따돌리고 우승한 뒤 "신발을 신은 '전갈' " 이라는 별칭을 얻었다. 그는 5000m에서 은메달을 확보하기도 했다.

그의 생애 가운데 가장 영광스런 순간은 52년 헬싱키올림픽이었다. 육군 대위로 복무하던 그는 5천m와 1만m 부문에서 우승하고 내친 김에 마라톤에 출전했다. 그는 10,000m를 29분 이내로 달린 최초의 선수이기도 하다.

세계기록을 18번이나 작성한 ‘육상계의 큰별’인 자토펙이 달리기를 시작한 것은 아주 단순했다. 구두공장 직원이던 열아홉 청년시절.공장 사장이 크로스컨트리 대회에 한번 나가보라고 등떠미는 바람에 마지 못해 나간게 인연이 됐다.당시 자토펙은 뛰기가 싫어 의사에게 병에 걸렸다고 진단서를 끊어 달라고 했을 정도. 결국 의사가 거절하자 “그래 이왕하는 김에 우승하자”며 뛰어들었다.

한 번도 마라톤을 뛰어 본 적이 없던 자토펙이지만 기어코 42.195㎞를 완주하며 금메달을 땄다. 나중에 그는 "마라톤을 뛰고 나서 일주일 동안 걷지도 못했다" 고 술회한 바 있다. 올림픽 사상 육상 장거리 3관왕은 자토펙이 유일하다. 자토펙은 이후에도 피눈물나는 연습을 통해 17년 현역생활동안 세계신기록을 18번이나 깨뜨렸다.

그는 혹독한 훈련을 통해 기록을 수립했다. 군 초기시절에 밤에 완전군장을 하고 플래쉬를 들고 훈련했다. 욕조에서 제자리뛰기로 훈련하기도 했다. 가스마스크를 쓴 채 다리에 4.4파운드의 무거운 추를 달고 달리는 것이 그의 독특한 훈련법이었다. 심폐기능을 향상하기 위해 숨을 멈추고 달리는 연습을 했다. 한때 숨을 너무 오래동안 멈춰 기절하기도 했다. 누군가 혀를 늘어뜨리고 어깨를 크게 흔들면서 다리를 휘청거리며 뛰는 자토펙에게 "왜 그런 고통스런 모습으로 뛰냐" 고 묻자 그는 "내게는 달리면서 웃을 수 있는 재주가 없다(I was not talented enough to run and smile at the same time)" 고 답한 적도 있다.

이같은 '지옥훈련' 만이 그를 영웅으로 만든 것은 아니었다. 그는 '인터벌 트레이닝' 라는 과학적 훈련법을 고안했다. 이 훈련법은 1만m를 그대로 뛰는 것이 아니라 2백m나 4백m씩 구간을 나눠 각 구간을 전력질주하고 구간 사이마다 휴식을 취하는 방법. 그렇게 하면 힘을 늘리고 근육 피로를 더는 장점이 있어 지금까지 대표적인 육상 훈련방식으로 자리잡고 있다.

마른 체구(5피트8인치의 키에 139파운드의 몸무게)에 뽀족한 얼굴을 가진 자토펙은 붙임성과 유머감각을 지닌 '신사' 이기도 했다. 자토펙의 기록을 깨뜨렸던 호주의 론 클라크가 체코로 찾아왔을 때 공항으로 마중나간 자토펙은 꾸깃꾸깃 포장한 물건을 클라크의 손에 쥐어줬다. 그것은 클라크의 이름을 새겨놓은 헬싱키올림픽 1만m 금메달이었다.

체코인들이 자토펙을 사랑하는 이유는 그가 뛰어난 육상선수였기 때문만은 아니다. 태어나면서부터 독재권력을 혐오한 자토펙은 2차대전 나치가 체코를 점령할 때 달리면서 분노를 삭였다고 한다. 그는 '사회주의 영웅' 을 거부하고 68년 '2천어 선언' 에 동참하며 체코의 반소(反蘇)민주화 운동을 적극 지지했다. 소련이 탱크로 '프라하의 봄' 을 짓밟고 난 뒤 체코 공산정권은 그를 육군 육상팀 코치에서 해임시켰으며 자토펙은 이후 20여년간 유배나 다름없는 생활을 보내야 했다.

72년 뮌헨올림픽에 초청받을때까지 그의 유배생활은 계속됐다. 공산정권이 물러난 90년 완전히 복권됐지만 이젠 병마와 싸워야 했다. 원인을 알 수 없는 바이러스에 결핵과 심장박동이상이 겹쳐 올 8월 병원에 입원했고 오랜 투병생활 끝에 꿈에 그리던 시드니올림픽 참석도 못한채 운명을 달리했다. 그는 아내 자톱코바와 생년월일(1922년 9월19일)이 똑같다. 52년 헬싱키 올림픽때 자토펙이 5000m에서 금메달을 목에 건 그날 아내 자톱코바도 여자 창던지기에서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2000년 12월 6일 체코 프라하에서 국장으로 치러진 장례식엔 체코 국가와 자토펙의 고향 민요가 울려퍼지는 가운데 수천명의 추모인들이 모여 애도의 눈물을 흘렸다.

라미네 디아크 국제육상연맹(IAAF)회장은 “우리가 그의 죽음에 슬퍼하는 이유는 그가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4개나 따냈기 때문이 아니라 너무도 평범한 한 인간이었으며 개인의 자유와 존엄성을 위해 온몸을 던진 투사였기 때문이었다”고 애도했다. 이날 장례식엔 체코의 밀로스 제만 수상 등 주요 요인들은 물론 사마란치 국제올림픽위원회(IOC)위원장 등 각계 인사가 대거 참여해 슬픔을 함께 했다.

자료 : 뉴욕타임즈, 연합뉴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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